Cafe de flore
우리는 한식 넓게는 아시안식을 주식하는 가족이다. 타대륙의 음식도 먹지만 자주 찾진 않는다. 그리고 여행지의 식사도 그냥 그때 그때 먹고싶은걸 찾아서 먹는 편이다. 그러다보니 프랑스에 와도 프랑스음식 딱히 떠올리게 안되는데 한군데만 꼬옥 가라고 하면 그건 무조건 Cafe de flore. 피카소, 카뮈, 보부아르등 파리지성의 아지트였던 곳. 샌프란시스코 대학시절 거기도 이런 이름의 카페가 있었다. 미션지역초입 트레인 트럭 갈라지는 길 중간에 오두막처럼 있었다. 식물이 많았다. 친구들이랑 여기 앉아서 수다 떨며 게이클럽 오픈할때까지 기다리곤 했다. 힐을 안신고 신나게 놀고픈 날은 게이친구들이랑 이 동네를 잘 갔다.
파리의 cafe de flore 는 외관은 다른데도 늘 그 카페를 떠올리게 한다. 전차길이 갈라지는 길 한복판의 샌프란시스코 미션지구의 cafe de flore 를. 어두울때까지 의자들 끌어모아놓고 시끌벅적 다 터질것 같던 청춘. 무슨일이 있어도 꼭 한번은 들리는 파리 나의 방앗간.
#카페트플로르 #파리여행 #파리카페
김밥과 빠리
레미제라블을 보기전 김밥을 포장했다. 극장을 그렇게 다녀도 음식 반입 불가를 생각못했다. 홈리스에게 전해달라고 직원에게 부탁 후 공연끝나고 또 샀다. 피카디리에는 한식집 풍년이다. 한국에서처럼 기차에서 김밥먹는게 하고 싶다는 딸을 위해 악착같이 샀다. 맛은 그냥 그랬다. ”어제 그 김밥 아깝다 그치?“ ”Yeah but we gave it to Les Miserables so it’s ok” 두시간 반 트레인 라이드내내 영국 발음으로 케이팝데몬헌터스 노래 부르는 귀여운 아기 노래를 듣다보니 Gare du nord 에 도착. 이번 여행은 모두 Amex Travel 로 예약했다. 숙소를 직접 알아보는걸 좋아하는데 근처에 있는 슈퍼마켓 영업시간까지 따져서 잡는다. Amex travel 의 무료업그레이드, 1박무료 조식포함들 유혹을 이겨내지 못했다. 물가 쎈 대도시는 이게 젤 낫다.
짐을 대강 풀고 저녁 초대에 갈 와인 한병 사들고 나섰다.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썸머캠프를 할때 딸이 만난 친구네 집. 그집 엄마는 아르헨티나에서 태어나 인도네시아 포르투갈에서 학교를 다니고 미국서 대학 & 취업을 했다고 했다. 지금은 파리에 살고. Why Paris? Why not? It’s Paris. 그렇다. 맞는말을 하는 여자네? 우리는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같이 동물원을 갔다. 헤어질떼쯤 그녀가 말했다. “Thanks for being so awesome and interesting.” 모르는 엄마랑 동물원가서 온종일 뭐하나 솔직히 걱정했다며. 나랑 똑같은 걱정했구나. 샴페인을 부어주며, 프랑스식으로 가자. 파리에서는 애들 플데가면 ”샴페인?“ 하고 물어본단다. 참 사람 살기 좋은 동네야.
그 엄마왈, 단골 정육점에 고기만 고르면 뼈에서 고기가 부르르르하며 떨어지도록 제대로 만들어준다는 븨프부르기뇽과 흰밥을 피노누아와 먹었다. 라즈베리 타르트와 초콜릿 무스도. 베이킹은 안하고 제일 맛난 베이커리에서 사왔다고 했다. 치즈도 먹고 먹고 마시고 런던 맥주와 선데이로스트 흉을 잔뜩 보았다. 그녀가 말했다. ”Poor you, but don’t worry. Your are in Paris now. What can go wrong? Paris have good food, good wine, beautiful people.” 역시 맞는말만 하는 여자다. 빠리에서는 모든일이 잘 풀리고 언제나 기분이가 조크등. 다 이쁘고 뭐든 맛있는 Mon cher Paris!!!! #전생파리지앵 #파리여행 #파리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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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스타 마지막 포스트가 3년이나 지났습니다.
그 사이 이사를 했고, 새식구가 생겼고, 남편이 월급뽕을 포기하고 사업을 시작했고, 저는 하던 일을 잠정적 멈췄습니다.
11년전 하진이를 낳고 일러스트레이터가 되어서 돈을 억수로 벌꺼라고 떨치고 일어났을때 많이들 말렸습니다. 왜 안될 일을 하려고 하냐고. 하지만 제 재능을 믿어주던 가까운 사람들의 응원으로 순식간에 자리잡을수 있었고 분수에 넘치는 프로젝트들을 맡으며 정신없이 8년을 일했습니다. 어린 아이를 키우면서 프리랜서로 일하는데에는 헤아릴 수 없이 고비가 많았지만 일할 수 있어서 고맙고 행복했어요.
이미 가족의 사업실패를 경험해본 저는 남편이 사업하는것을 싫어했습니다. 하지만 어느 순간 가장이라 자신의 꿈을 하나씩 내려놓아야 하는 나의 가장 친한 친구가 마음 아파졌고, 결국 빚도 좀 지고 집사려고 만들어둔 돈을 투자해서 까짓거 한번 해보라고 했어요. 최악의 경우 망하기밖에 더 하겠냐, 인생 한번 살지 두번 사는것 아닌데 해보고 싶은건 하고 죽어야지. 라는 마음으로. 남편은 삼당사락 대머리에 흰띠쫌맨 고3 수험생처럼 일에 매진했고, 저는 페이지가 적은 프로젝트만 맡기 시작했는데도 정해진 워킹아워도 없고 밤샘 밥먹듯 프로젝트가 몰릴땐 기본 생활도 어려운 마감에 시달려 방치된 집과 아이를 보고 일단 내가 일을 줄이는게 맞다 생각해 아쉽게도 거절해야 하는 프로젝트들이 늘어갔습니다. 남편도 나도 각자 자리에서 힘들고 겁이 나는 시간을 참고 견디어보내다 보니 어느날 정말 악몽에서 깬것처럼 빚도 다 갚고 제대로 된 회사를 만든 단계에 들어서 있었어요.
번아웃이란 것이 긴장이 풀어지면 스르륵 찾아오는지 그때부터 아무것도 안하고 아무도 안 만나고 소파와 한몸이 되어 시간을 보냈습니다. 이렇게 좀 지내다 보면 곧 다시 그림도 그리고 일을 하고 싶어질 줄 알았는데, 어째 노는것은 지겨워지지가 않더라고요.
그래서 일단은 노는 이야기들이라도 저장해두기로 했습니다. 인스타그램은 정체성이 뚜렷해야 한다고 해서 그림만 올리는 계정이었는데, 정체성이 불투명한 현재의 상태가 저의 정체성입니다.
#잠정적휴업 #노는건못멈춰
Les Miserables
30년만에 레미제라블을 보았다. 1996년도에 예술의 전당 오리지널 투어를 보고 (이수성 총리랑 엘레베터서 마주침- 경호원이 담꺼 타라고 ㅎ 여고생이 위협적인가…) 21년전 같은 극장 런던에서 보고 세번째다.
엉엉 오열엔딩
우리는 결국 모두 레미제라블-불쌍한 사람들이다. 지구에 존재하기 시작하는 순간부터 셀수없는 폭력, 배신, 미움, 불공평함의 희생자가 된다. 그런것들이 나를 끌어내릴때 어둠에 빠져들지 않기 위해서는 믿음이 있어야만 한다. 장발장처럼 구원을 믿고 에포닌처럼 사랑을 믿고 앙졸라처럼 혁명을 믿고 판틴과 코제트처럼 선의를 믿어야 한다. 빅토르 위고처럼 인간의 존엄성을 믿어야한다. 그래야 인생이라는 짧은 방문길에 불쌍한사람에서 끝나지 않고 무언가를 얻어갈 수 있다.
택시서 남편왈
What a way to end London before we move to Paris tomorrow
#런던여행 #아이랑여행 #레미제라블
뉴욕블리자드
내가 뉴욕을 사랑하는 이유는 셀수가 없지만 그중 하나만 꼽으라면 그건 뉴욕에 사는 사람들이다. 뉴욕커들은 호들갑이 없다. 쉽게 흥분하지도 않고 좌절은 엥간해선 더더욱 하지 않는다. State of emergency 가 내려도 주변 가게 휴지를 사재기 하는 대신에 스키랑 썰매를 꺼내든다. 눈이 그치자마자 집근처 센트럴 파크로 나선다. 블리자드라는 무서운 이름을 축제로 바꾼다. 모르는 사람들끼리 단체 눈싸움을 하고 썰매를 타고 스키타고 파크 산책을 한다. 이렇게 인생을 celebrate할 기회를 놓치지 않는 매력적인 이웃들과 뒷마당 센트럴파크를 나누어쓰는 도시를 무슨수로 사랑하지 않는단 말인가! 눈이 오면 센트럴피크는 동화속 얼음마을이 된다.
도플갱어
처음 만난것은 4년쯤 전 몽마르뜨 언니의 첫식당에서다. 파리에 온김에 좀 색다른 한식을 먹으러 찾아간 식당 사장님을 보고 친구가 말했다. “도플갱어를 만나면 죽는다지 않았어? 언니 50살되면 딱 저렇게 될것 같아.” 사장님은 확실히 나하고 풍기는 기운이 비슷했다. 동글동글 귀여운데 싸나워보이는, 으르렁대게 생긴 시츄상. 도플갱어에게 반한 나는, 와인 한잔 드실래요? 먼저 뻐꾸기를 날렸다. 그러자? 난 내술 마실래. 라며 와인잔 그득 자기 와인을 담더니 의자를 빼고 앉는다. 서로에게 홀렸는지 새벽까지 샤따문을 내리고 진창 마셨다. 담날 아침 비행기로 뉴욕에 돌아가야하는데 친구들이 짐을 싸서 나가면서 그런다. “언니는 비행기표 바꿨어. 얼른 그 사장님한테 전화해봐요. 핫팟 먹으러 가기로 약속했어.” 뻥인줄 알았는데 진짜 나만 표가 바뀌어 있었다. 사장님 전화번호가 내게 있나???? 진짜 있다. 약속장소에 나가서도 이 사람이 진짜 올까???
불안한 중 저기서 노랑 쟈켓을 입은 귀여운 여자가 함박웃음을 지으면서 뛰어온다. 핫팟을 먹고 수다를 길게 길게 떨었다. 언니는 남편이 아트딜러라서 뉴욕엘 종종 간다고 했다. 따라와! 우리랑 놀자. 그 8글자를 믿고 언니는 진짜 왔다. ㅎㅎ 책임감을 느낀 우리는 하루에 3끼씩 같이 먹을 계획을 짜며 그녀를 밀착수비했다. 이번엔 언니가 그리스에 같이 갈래? 던진 8글자에 우리 가족 또 진짜 갔다. 그리스 파로스섬에서 밤에는 언니가 만들어주는 탕수육, 매운 소고기 국, 생선 회, 양배추 김치등을 먹고 매일 낮에는 비치를 바꿔가며 비치호핑을 했다. 부겐빌레아가 흐드러진 하얀색 마당에 앉아서 삼겹살을 굽고 숟가락을 들고 시나트라를 부르고 여름을 함께 했다. 이곳은 마레지구에 있는 언니의 3번째 식당이다. 말모말모. 그녀는 참 오지게도 창의적이고 센스작렬. 푸아그라와 고추장쨈, 가리비를 올린 순대같은 메뉴들이 있다. 딱 자기처럼 푸근한데 엣지있고 털털한데 시크한 음식들. 우리같은 여자들에겐 한번 빠지면 다음생에도 못 헤어나옴
@omacuisine #vingtvinsdart #파리맛집 #마레지구
릿츠런던
런던에 왔으면 애프터눈티는 한번 무야지. 그래서 호텔서 가까운 Ritz 에 예약을 했다. 마침 발렌타인데이라서 어렵게 예약. 호텔 근처에 다가갈수록 갑자기 뉴욕 아만에서 입뺀먹은 슬픈추억이 떠올르면서 남편을 보니깐 후드티 위에 봄버, 츄리닝바지에 운동화 그리고 패니팩을 크로스로 메고 있음. 후드라도 봄버속으로 숨기고 패니펙은 벗겨서 내 가방에 쑤셔넣고. 콰지모토같이 등이 불룩해진채로 도착했는데 입구에서 위아래로 훑길래 ‘또 인가…‘ 싶었는데 너무나도 정중하게 작은 방으로 남편을 모시고 가더니 이쁘게 다시 드레스업할 기회 증정. 아만보다는 릿츠인가? 쫓아내지 않고 옷을 빌려 준다 ㅎ
우리 천사같은 딸래미.
“Um Can you do me a favor? Please please never wear tie again. Thank you.”
나중에 남편왈, 난 영업직을 오래해가지고 보통 신입때 정장 입고 타이메고 바지 줄세우고 영업하러 다니거든. 그러고 그런 복장을 안 입어도 되는 날이 오면 그 업계에서 방구 좀 낀다는거야. 그래서 정장차림을 안하는건 내 과시의 표현이야.
릿츠에 영업하러 가는것도 아닌데 대체 무슨 상관이지? 아무튼 남편 꽃돌이 만들어준 덕분에 유쾌하고 즐거웠던 애프터눈 티.
#런던여행 #애프터눈티 #릿츠런던
런던 첫날.
프레지던트윜 방학이라 하진이 와보고 싶다던 런던을 왔다. 브리티쉬 액센트를 실제로 듣고 싶다니 들려줘야지. 근데 무인입국에 택시기사는 아프리칸, 호텔 리셉선은 한국인. ㅎㅎ 하진아 곧 듣게 될꺼야. 일 해야한다는 남편을 호텔방에 버리고 하진이랑 나섰다.
하진아 점심 뭐 먹을까? 런던의 썰렁한 날씨를 잠시 느끼더니 Pho 어때라는 내새끼. 차이나타운 걸어가서 포 한사발씩 드링킹. 여기서 드디어 엑센트 경험. 자기가 오는길에 다 봐뒀다며 나를 Pop Mart로 이끈다. 엄마처럼 눈이 매섭꼬나.
리버티도 가고, 여기서 영국 여자랑 어깨빵하고 싸운다. 나는 백빙썅들에게 절대로 지지 않는 전투력을 갖춘 프라우드 뉴요커다. 하진이도 엄지척을 보여주며 존경심을 표현했다. 호텔로 돌아왔더니 밥벌이지옥에서 풀려난 남편과 호텔 근처 Rose & Crown 으로 갔다. 올리버 크럼웰의 숙소였다는 리뷰에 관심이 생겨서 갔다.유럽 역사상 처음으로 쿠데타에 성공하고 무덤에서 파헤쳐져서 영혼교수형 당한 남자. 이건 성공한것도 실패한것도 아니여. 아이들은 9시 이후 있을수 없다고 해서 다음에.. 하고 나왓다.
차이니즈 먹을래? 그딸에 그 아빠다.
나는 이제 다른걸 제안할 생각조차 않는다. 15년간 얘네랑 너무 아시안 음식만 먹어서 내 피도 액젓과 간장이 7할. 거부할 이유가 없어서 도돌이표처럼 다시 챠나타운으로 간다.
바이브디텍터 더듬이를 뽑아 찾아들어간 식당은 1972넌부터 있던 곳. 중식 마니아 둘이서 열심히 고른다. 니넨 내가 뭐 먹고 싶은지는 안물어보니? 지네가 먹고 싶다는 것들 다 시켜준다. 나에겐 맥주만 있음 뭐든. 맛있다. 너무 맛있다! 런던은 중식이구나!
하진이가 또 봐뒀다는 아이스크림집으로 간다. 끝없이 지가 갈곳을 봐두는게 내새끼맞다. 추워죽겠는데 일인 일아스림하고 걸어서 복귀.
#런던여행 #아이랑여행 #런던차이나타운 #리버티 #어깨빵
노팅힐.
미국식 발음이 익숙하지만 노팅힐은 나링힐말고 노팅힐이어야 한다.
가는길에 남편이 하진에게 자기 연애사를 이야기해준다.
“내가 예전에 여친에게 차이고 살이 십키로가 빠졌어. 난 아직 버클리에 있는데 그 여친은 뉴욕으로 대학원을 가서 아무래도 우리는 헤어져야 하겠대. 아무것도 먹기 싫고 살기 싫고 울고만 있으니까 내 친구 마이크가 너 이러다 죽는다고 나가자 영화라도 보자고 해서 내가 노팅힐을 선택했어. 노팅힐을 보는데 거기서 휴 그랜트가 딱 그래. “I live in Notting hill. You live in Beverly Hills.” 나처럼. I live in Berkeley and she lives in New York. 그래서 그 영화관에서 엉엉 울기 시작했어. 아빠가 불쌍하지?”
아빠를 물끄러미 쳐다보던 하진
“그 영화관에 어떤 어린 꼬마애가 엄마랑 그 영화를 보러 왔다쳐바. Little Jimmy 라고 하자. Little Jimmy 는 엄마랑 영화관가서 팝콘먹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갑자기 옆자리 아저씨가 으앙 하고 우는거야. 그래서 Little Jimmy가 뭐랬게? What a drama queen. 라고 했어.”
카펫 걸레물로 빨아서 자연건조한 냄새가 나는 펍에서 시킨 실온 맥주. 이런 신발, 이 세상에 태어나서 먹어본 맥주중 최악이다. 라고 영어로 말했다가 주변 영국인들로부터 <째려보지 않은채 째려봄>을 당했다.
근처 길거리 시장에서 빠에야도 사먹고 노팅힐에 사는 어떤 멋쟁이 엄마가 들고 있던 Daunte 토트백을 매의 눈으로 저장 찾아가서 따라사기. 차이니즈 신데렐라 커버 디자이너 공개수배합니다. 이게뭐야.
#노팅힐 #런던여행 #아이랑여행 #실온맥주타도하자